푸른 별

지금에 와서야 기억나는 것은, 로보토미 사에 정식으로 입사하고 난 직후 지휘팀장인 벨라스케즈의 말이었다. 분홍빛의 화관을 쓰고 눈을 붕대로 칭칭 감은 독특한 인상의 그는 햇병아리였던 우리에게 당시에는 이해할 수 없을 말을 건냈다.

 


사람이 언제 사람이 아니게 되는지 아니?”


 

나와 동기 아냐는 멀뚱멀뚱한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분명 그저 인수인계인 줄 알았는데 갑자기 철학적인 질문에 당황했다. 나와 아냐는 외곽출신으로 어떠한 정규교육도 받지 못해 전혀 대답할 수 없었다. 이 회사 또한 낙타가 바늘을 통과할 확률로 겨우겨우 입사하게 된 회사였고 이 질문에 우리들의 회사생활이 엉망이 되지 않을까 걱정했다.

불안해하는 우리를 보고 그는 잠시 누그러진 표정으로 우리를 다독였다.

 


너희가 아직 답을 낼 수 있을 문제가 아니니 안심해도 돼. 이건 내 개인적인 충고니까.”


 

우리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자, 그는 말을 이어갔다.


 

이 회사는 날개의 일원으로써 막대한 에너지를 생산하지. 밖에서 보았을 때는 대단한 기술력을 가진 회사라고 생각하겠지만, 사실 이 회사만큼 원시적이고 직관적인 회사도 없어. 너희들은 앞으로 많은 것을 알게 되고, 그만큼 많은 것을 잃게 될 거야. 자각하지 못하는 사소한 것도, 끔찍하게 아끼는 것도 모두 짓밟히게 될 거고 결국 텅 비어버린 공허만이 남아 자신을 부식시키겠지.”


 

그는 이해할 수 없다는 우리의 표정을 보고 주머니를 뒤적거리다 작은 풍선 하나를 꺼내 불었다. 풍선은 처음에는 튼튼해서 좀처럼 헤질 것처럼 보이지 않았지만 부풀면 부풀수록 연약하고 아슬아슬하게 겨우 형체를 유지할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흔히 사람들은 공허함을 강함으로 착각하기도 하지. 이제 아무것에도 상처 입지 않고, 덤덤해졌다고, 강해졌다고. 빈번한 일이야. 하지만 본질은 이 풍선과도 같아. 안의 외벽은 한없이 깎여 얇아지고 위태롭게 겨우 자아의 형태를 유지하는 정도밖에 되지 않아.”


 

여기에서 작은 익숙하지 않은 자극을 불어넣는다면- 벨라스케즈가 풍선을 단단하게 움켜쥐자 단숨에 풍선이 펑- 소리와 함께 산산조각으로 사방에 흩날렸다. 하늘에서 내리는 찢어진 붉은 풍선의 막은 마치 인간의 편육처럼, 피처럼 보이는 듯했다.


 

이렇게 펑-하고. 모든 것을 잃게 되겠지.

언제나 조심하렴. 나락에 떨어지는 것은 사소하고도 작은 자극으로 인해서 떠밀어지는 거니까.”

 


그는 입을 비틀었다. 자조인 건지 슬픔인 건지 구분되지 않은 모호한 표정이었다.

 

 

나는 너희들을 오래 보길 바라니까.”

 

 





 

그리고 그 이후 나는 그의 말마따나 많은 것을 잃었다. 입사 동기 중 남은 이는 아냐 밖에 남지 않았다. 동기들은 정말 다양하게 죽었다. 온전한 사람의 형체를 가지고 죽은 동기들도 소수였다. 목이 간지럽다고 긁던 브라운은 목이 안쪽부터 잘려 죽었고 제이콥은 그저 으깨진 장기밖에 건질 수 없었다. 동료가 죽는 것은 끔찍했다. 방금까지 같이 간식을 먹으며 담화를 나누던 자가 환상체의 일부가 되어 나를 공격하는 것은 전혀 익숙해지지 못할 것만 같았다.

그러나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 아니던가. 나는 결국 익숙해졌다. 처음에는 시체를 치우는 것부터 시작하여 환상체의 일부가 된 직원을 제압하는 것도, 아직 인간인 직원을 처분하는 것까지. 서글프게도 익숙해져 버렸다.

 

그리고 난 우수직원이 되어 회사의 심장부인 하층으로 내려갔다. 그리고 기록팀장이 되고, 회사의 궁극적인 비밀에 닿았다.

그 비밀은 차마 이 아둔한 머리로는 묘사할 수 없을 끔찍함이다. 그 비밀에 닿고 난 이후로 나는 내 안의 인간성이 메말라 가는 것을 느꼈다. 직원을 사람으로 느낄 수 없었다. 그저 데이터 더미일 뿐이었다. 그토록 소중하게 느껴졌던 유일하게 남은 동기 아냐까지.

 

 





 

정말 아무것도 느낄 수 없게 되었다- 라고 생각했다. 그래. 바로 그를 만나기 전까지.

 

어느 날 새롭게 기록된 직원 중에서 생소한 이름들을 검토하던 때에, 그의 이름을 보았다. 이때까지의 모든 기록에서도 보지 못한 이름이었다. 정말로 막 회사에 입사한 파릇파릇한 신입이라는 뜻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딱히 그를 만날 수 있으리라 생각하지 못했다.

 

어느 날 중앙본부에 환상체가 탈출하여 제압하러 갈 때 복지팀에서 우연히 그와 마주쳤다. 별처럼 반짝이는 그의 눈을 바라보았을 때, 순간 세상이 멈춘 것만 같았다. 주변의 모든 소음이 잠잠해지는 듯했다. 복지팀장인 라이라가 나를 화내면서 잡아끌지 않았더라면 나는 그저 그 멈춘 시간 속에서 너를 바라보고 있었을 것이다. 복지팀을 나서기 직전에 너의 이름을 알아챘다. 딜런. 딜런. 완전히 새로운 세상에서 막 유입된 직원. 딜런.

 

딜런. 너의 이름을 알고 나서 나는 그 이름을 혼자 수천 번 발음했다. 입속에서 혀가 전체적으로 둥그렇게 말리면서도 가장 위와 가장 끝까지 전체적으로 쓸었다. 목에는 좋은 울림이 퍼졌다. 그 느낌이 기분이 좋아서 입버릇이 될 때까지 발음했다. 일이 생겨 복지팀으로 올라갈 때는 발걸음이 날아가는 듯했다. 일이 아니라도 나는 우연을 가장하여 복지팀에 자주 들렀고, 너와 말을 섞을 수 있게 되었다.

 

처음 말을 섞었을 때 그 심장 고동을 잊을 수 없었다. 내 몸은 이 회사의 하층에 처박혀 있지만, 마음은 하늘을 뚫었다. 그와의 만남은 어째선지 익숙해지지 않았다. 언제나 놀라움과 감동의 연속이었다. 별처럼 반짝이는 눈과 재잘거리는 입, 그의 행동거지 하나하나가 내 마음을 무너뜨렸다. 나를 향한 단순한 손발 짓에도 마치 심장을 깃털로 쓰다듬는 것처럼 간지러웠다.

 

그렇게 몇 번을 만났을까. 그는 어느 날 나에게 이런 말을 꺼냈다.

 

 


데스티니 팀장님. 별을 본 적이 있어요?”


 

 

별이라니. 지하에 있는 이 회사에서 가장 생소한 단어가 아닐까.


 

 

외곽에서 늘 보아왔습니다. 그곳에서 허락된 것은 빈 하늘밖에 없었으니까요.”


 

 

그의 질문이었으니 최대한 기억을 짜내서 대답했지만 사실 별을 그다지 깊게 된 적은 거의 없었다. 그곳에서는 하늘을 바라볼 여유도 없었으니까. 죽지 않기 위해 발버둥 쳤고, 죽지 못해 살았다. 가끔가다 하늘을 보았을 때 하늘에 반짝이는 무엇인가가 있었다는 것은 기억이 나지만 별 감흥은 느끼지 못했었다.

그러나 그는 이런 내 질문에도 뛸 듯이 기뻐했다. 나는 내색하진 않았지만 속으로 과장되게 말하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회사에 들어온 이례로는 별을 본 적이 있나요?”

 

그건.”

 


 

살짝 표정이 굳을 수밖에 없었다. 지하에 있는 로보토미 사에서 어떻게 별을 볼 수가 있을까. 그도 내 표정을 보고 회사의 위치를 자각했는지 잠시 아차! 하는 표정을 짓다가 시무룩해졌다. 나는 위로를 해야 할까? 그의 앞에서 안절부절못하고 손만 꼼지락댔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그는 다시 얼굴에 홍조를 띄우며 나에게 낭창낭창한 목소리로 말했다.

 


 

갑자기 웬 별 이야긴가 했죠? 미안해요. 사실 저는 별을 정말 좋아하거든요.

그래서 천문학자가 꿈이었는데……. 날개인 S사에 입사하는 건 정말 말 그대로 하늘에 별 따기였죠. 하긴 S사에서도 저같이 능력 없는 놈이 필요하질 않았을 거예요……. 그 당시의 저는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고 어영부영하고 있었어요. 방황도 했죠.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야 정신을 차릴 수 있었어요.”

 


 

처음에는 활기찬 목소리로 시작했지만, 점차 그의 목소리가 기어들어 갔다. 가정사인가. 가족이 없던 나에게는 어떤 위로의 말도 떠오르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갑자기 나에게 얼굴을 들이밀었다. 웬만한 자극에는 별 반응하지 않던 나였지만 그때는 얼굴이 너무 가까워서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의 숨결이 내 얼굴에 닿는 것이 느껴졌었다. 당황하는 나와 달리 너는 짓궂게 웃으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 말이에요. 하늘에 정말 밝고 아름다운 푸른색의 별이 새로 떠오른 게 아니겠어요? 처음에는 우연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취업준비를 할 때 어릴 때 어머니가 해준 옛날이야기가 떠올랐지요. 착하게 산 사람은 신께서 하늘의 별로 만들어 다른 사람들이 우러러볼 수 있게 한다- 라는 진부한 이야기였어요. 그래, 어쩌면 저 별은 어머니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저를 스쳤죠. 그때부터 정신을 다잡고 취업준비를 했어요. 별이 된 어머니까지 실망시킬 순 없었으니. 그 결과로 S사는 무리였지만 결국 날개에 취직할 수 있게 되었고, 당신이라는 멋진 사람까지 만날 수 있게 되었지요!”


 

 

그는 그 말을 하고 살짝 격한 숨을 내쉬었다. 잠시 우리사이에 침묵이 가라앉았다. 그의 이야기는 나에게 너무 생소했기 때문에 잠시 속으로 생각을 정리하기 위함이었지만 그는 어째서인가 얼굴을 빨갛게 붉혔다. 아마 자신의 모습이 어린아이처럼 비쳤을까 우려하는 눈치였다.


 

 

헤헤……. 우습죠? 하지만 전 믿어요. 착하게 살면 언젠가 하늘에 별이 되어 평온하고 아름답게 살게 된다고. 외곽의 괴물이니 날개니 둥지니 그런 모든 슬픔을 다 털어버리고, 정말로 저희는 자유로워지는 거예요.”

 


 

자유.

그의 모든 말은 나를 설레게 하였으나 유독 그 한 단어가 나를 꿰뚫는 느낌이었다. 이 회사에서 자유라니. 아니 이 인생에서 벗어나게 될 수 있다니. 다른 이가 말했다면 비웃음도 짓지 않을 허무맹랑한 이야기였지만, 너의 입 너의 음성으로 들은 이야기라서 나는 어쩐지 맹목적으로 그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딜런, 정말 너의 말대로 언젠가 우리가 별이 될 수 있다면, 그곳에서도 너와 내가 함께 할 수 있을까?

 

 







 

 

 

[[여긴 중앙 1팀장 에반젤린. 지금 [검열삭제]가 탈출했다. 지금 당장 3등급 미만의 직원들은 도망-]]

 

작업의 막바지를 향한 시점에서 2단계 트럼펫이 회사 내에 울려 퍼졌다. 검열삭제가 탈출하다니. 중앙본부 직원들이 호락호락하는 놈들은 아니었지만, 알레프 등급인 만큼 주의할 필요가 있었다. 다른 환상체들의 연쇄적인 탈출을 야기할 수도 있고 무엇보다 [검열삭제]가 증식하면 매우 골치 아픈 일이 될 테니 초장부터 제압하는 것이 정석이었다.

중층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를 타면서 혹시 모르니 그에게 당부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아직 그는 2등급 신입이었으니 최대한 멀리 떨어져 있으라고. 잠시 기록팀으로 대피시키는 것도 좋은 방법이겠지.

그러나 어째서인지 복지팀에 그가 보이지 않았다. 갑자기 마음이 다급해졌다. 급하게 팀장들의 회선으로 복지팀장 라이라에게 무전을 넣었다.

 

 


여긴 데스티니. 라이라, 딜런은 어디 있어?”

 

[[이게 지금 무슨 소리 하는 거야. 지금 한시가 급한데 그런 소리를]]

 

딜런, 어디 있냐고. 먼저 물어봤잖아. 어딨어?”


 

 

무전기 너머로 꽤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는지 주변에는 미쳐버린 직원들의 비명소리가 들리고 그의 숨소리또한 거칠게 느껴졌지만 내 알바 아니었다. 지금 그래서 딜런은 어디있어? 라이라. 너는 복지팀장이잖아. 왜 딜런이 어디 있는지 몰라? 그래놓고 팀장이야 네가?


 

 

[[몰라. 모른다고. 그딴 녀석 지금 알게 뭐냐. 별이 보고 싶다고 은하수의 아이 격리실에서 가끔 서성이던데 그 길로 안 들어왔다. 그리고 너도 팀장이면 빨리 와서 제압이나 도와.]]


 

 

. 그렇구나. 은하수의 아이를 보러 갔다고. 은하수의 아이는 정보팀에 있으니까. 아마도 그는 트럼펫을 듣고 정보팀에 피신해 있겠지? 꽉 막힌 머리가 한층 순환되는 느낌이었다. 그래. 네가 돌아오기 전에 빨리 환상체를 처리하고 그를, 딜런을 만나자.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다시 나를 반겨주겠지.

미미크리를 들고 복지팀을 나서자마자 바닥에 꿈틀거리는 [검열삭제]의 새끼가 보였다. 인간을 기워 넣은 끔찍한 모습의 괴물이었지만 이미 그 모습에도 익숙해졌다. [검열삭제]가 되어서도 남아있는 육신으로 보아 중앙본부의 사무직으로 보였다. 망설임 없이 미미크리로 가른다. [검열삭제]에서 삐져나온 손이 구원을 위해 뻗어있지만 내가 내릴 수 있는 구원은 그들을 다시 지하로 돌려보내는 것뿐이다.

중앙본부 1층의 새끼들을 얼추 정리한 후, 2층에 들어가자 라이라가 [분홍]을 조준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제압을 방해하는 미친 직원들을 일일이 제압하고 있었다.

 


 

라이라.”

 

“......데스티니.”

 


 

아까 무전으로 폭언을 했기 때문인지 그는 내 얼굴을 보고 썩 불쾌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별 상관은 없었다.  한 달 정도 복지팀 로비를 피해서 다니면 기분은 풀리겠지.

 


 

왜 굳이 일일이 되돌리고 있는 거지. 어차피 사무직이잖아.”

 

내 맘으로 하는 거니까 신경끄고 갈 길이나 가.”

 


 

쓸데없는 짓을. 복지팀에 들어가고 나서 세피라를 닮아갔는지 너무 물러졌다. 등에서 마탄을 꺼내서 패닉된 직원들을 쐈다. - 분홍에서 나오는 억압된 발사음 보다 훨씬 호쾌한 소리가 복도를 크게 갈랐다. 라이라는 뜨악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지금, [검열삭제]가 버젓이 돌아다니고 있는데 이런 쓸데없는 일에 시간 낭비하지 마.”


 

 

빨리 저 환상체를 제압하고 딜런을 만나야 한단 말이야.

라이라는 잠시 나를 노려보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해가 되지 않았다. 왜 그렇게 보고 있어? 너도 하층에 닿았던 존재로서 지금 네가 하는 일이 얼마나 무의미한지 알면서.


 

 

언제나 너는 침착한 존재였지만……. 지금은 잘 모르겠다. 좀 이상해졌어 너.”


 

 

라이라는 한숨을 쉬면서 분홍을 챙겨 일어났다. 그는 [검열삭제]의 본체는 중앙 3층에 있다고 알려주고 주변의 살아남은 직원들을 통솔했다.

3층으로 올라가니 익숙한 얼굴들이 여럿 보였다. 에반젤린, 미하벨, 리유키, 아냐까지. -하층의 팀장들은 모두 모인 상태인 것 같았다. 검열삭제는 이미 너덜너덜한 상황이었다.


 

 

늦었어. 데스티니.”

 

미안. 아냐.”


 

 

이렇게 금방 처리할 거면 제압을 돕지 않고 바로 정보팀으로 딜런을 찾으러 갈걸 그랬다. 망설임 없이 [검열삭제]의 몸을 미미크리로 가른다. 몇 번 난도질 하지도 않았지만 이미 체력을 모두 소진한 [검열삭제]라서 그런지 얼마 버티지 못하고 넘어갔다.

에반젤린은 오만상을 지으면서 제압된 [검열삭제]의 말단 부위를 적당히 베어냈다. 탈출한 환상체를 클리포트 억제 상자에 넣기 위해 부피를 줄이는 필요한 과정이었지만 주변의 5등급 직원들은 아직도 익숙하지 않은지 질색하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남은 직원들을 모두 진정시킨 라이라가 클리포트 억제 상자를 가져오고, [검열삭제]는 관리실로 끌려갔다. 제압작전은 모두 마무리 되었지만 이상하게도 트럼펫은 끊이질 않고 있었다.

 


 

아직 어딘가에 숨은 [검열삭제]의 새끼가 있는 모양인데.”


 

 

아냐는 엔케팔린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몸에 좋지 않다고 추출팀의 부하직원이 만류하지만 이미 습관은 아냐의 몸에 뿌리깊게 박힌 모양이다. 후우, 연기가 뭉게뭉게 피어났다. 정신을 놓아버릴 강력한 마약이었지만 너의 눈빛은 전혀 흐트러지지 않았다.

주변이 시끌시끌했다. 중앙본부의 직원들은 뒷수습에 바빴고 징계팀장인 미하벨은 귀찮다는 듯이 남에게 떠넘기고 이미 훌쩍 자기 부서 로비로 가버렸다. 복지팀은 검열삭제의 클리포트 억제에 관해서 헤세드와 이야기하고 있었다.

데스티니는 주변을 돌아보다가 꿈뻑꿈뻑 눈을 깜빡거리며 자신을 바라보고 있던 아냐와 눈이 마주쳤다. 아냐는 기다렸다는 듯이 씨익 웃으면서 담배를 껐다.

 


 

남은 새끼는 중앙본부 4층과 상층과 연결되는 곳에 있을 가능성이 제일 크지. 데스티니. 기왕 하층에서 여기까지 왔는데 잠시 상층 공기나 맡고 갈래?”

 

그래. 안 그래도 정보팀에 볼일이 있어.”


 

 

이제야 너를 만날 수 있어. 기다려. 내가 갈게 딜런.

그런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중앙본부 4층에 올라갔다. 정보팀장 까미유에게 먼저 연락을 넣어볼까. 무선기의 회신을 이리저리 돌려보던 중이었다. 사람의 신체를 적당히 다져 이리저리 누덕누덕 기워 넣은 형태의 무엇인가가 4층 구석 계단에서 꿈틀거리는 것이 보였다.


 

 

여긴 기록팀장 데스티니. 남은 [검열삭제]의 새끼를 찾은 거 같다.”

 

[[그래? 이쪽 구역에는 아무것도 없었어. 아마 그 새끼가 마지막이겠지. 합류할게.]]

 


 

합류할 것까지야. 나는 미미크리를 꺼내 들었다. 어차피 어미도 잃어서 힘이 약해진 개체라서 혼자 처리하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 .........”


 

 

새끼가 의미 모를 무엇인가를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 이 개체는 성대가 그나마 제대로 붙어있는 개체인 듯했다. 까미유가 봤다면 신기하다고 연구대상으로 해부해보고 싶다고 눈을 밝혔겠지만, 그렇게 되면 또 관리에 피곤해질 테니 지금 내 손으로 처리하자. 미미크리를 높이 들어, 환상체를 처리하려는 순간에.

 

[검열삭제]의 새끼에서 그의 눈을 발견했다.

 

은하수를 품고 이상을 노래하는 별처럼 반짝이던 그의 눈을 내가 못 알아볼 리가 없었다. 아아. 자세히 보니까 복지팀의 완장, 여기저기 숭텅숭텅 난 털은 그의 머리카락 색과 같았다.

그도 나를 알아본 것일까. 그는 비틀린 음성을 중얼거리면서, 온몸을 비틀며 나에게 다가왔다.

 

나는 이상하게도 아무런 말을 할 수 없었다. 그가 그런 꼴이 된 것도 모두 거짓말 같았다. 의식이 붕 떠 있었다. 속으로 그저 부정하고 있었다. 아닐 거라고. 이런 환상체가 그가 아닐 거라고. 그러나 그렇게 생각하는 한편, 나에게 기어오는 그에게 무의식적으로 손을 뻗고 있었다.

 


 

!”


 

 

검은 마탄이 내 가슴을 관통하고 그의 머리를 터트렸다. 나는 에고 슈트로 피해를 덜 받았지만, 그의 오밀조밀 얽어져 버린 몸은 그렇지 못한 모양이었다. 눈앞에 피와 편육이 흐트러져 바닥을 붉게 물들이는 동시에 회사의 긴급상황을 알리던 트럼펫이 뚝 끊기고, 회사는 평화로워졌다. 그러나 나는 이상하게도 아무런 말도, 숨마저도 쉴 수 없었다.

딱딱하게 굳은 목으로 총알이 날아온 곳을 바라보았다. 그곳에서는 아냐가 마탄을 갈무리하고 있었다. 아냐에게 화를 낼까, 왜 도대체 왜 마탄을 사용했냐고, 딜런을 죽였냐고 비난할까. 하지만 입에서는 어떤 말도 하지 못했다. 그녀가 한 행동은 팀장으로서 당연한 일이자 불과 몇 분 전에 마탄으로 직원들을 처분한 나와 같은 행위였기 때문에.

아무것도 원망할 수 없었던 내가 할 수 있던 것은 현실을 부정하는 것뿐이었다. 그래. 눈을 감았다 뜨면 이게 모두 거짓이 아닐까. 몇 번을 감았다 다시 몇 번을 떴다. 그때마다 그의 터진 머리만이 나를 반길 뿐이었다. 바닥에 흘러가는 뇌수와 피, 흘러나온 눈알의 유리체…….

 

누군가를 위해 슬퍼하는 방법을 잊어버린 듯, 나는 눈앞을 막아줄 상냥한 눈물 한 방울도 흘리지 못했다. 그를 위한 울음소리조차 내지 못했다. 그저 나에게 허락된 것이라고는 끝없는 절망뿐이었다.

 


 

데스티니?”


 

 

아냐가 나에게 다가왔다. 나의 이변을 알았는지 그녀는 좀처럼 볼 수 없는 당황한 표정이었다. 그녀가 나에게 무슨 말을 건네고 있었지만 알아들을 수 없었다. 귀에서는 삐-소리 만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정신 차려, 데스티니. 넌 기록팀장이야. 일단 일어나. 여기에서 이런 꼴 보이면…….”


 

 

기록팀장, 기록팀장, 기록팀장…….

아무것도 들어오지 않던 머리였지만 이상하게도 그 단어만큼은 골을 울렸다. 팀장, 기록팀, 권한. 그 모든 것을 생각해 내는 순간 머릿속에 반짝, 별이 스쳤다. 그래, 그를 되돌려 놓는 방법을 떠올렸다. 나는 이대로 그를 차가운 지하 속에 묻을 수 없었던 것이었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주변의 몇이 나를 걱정하여 붙잡으려 했지만 아무것도 돌아보지 않은 채로 기록팀 부서 로비로 전속력으로 뛰었다. 보통사람보다 몇 배는 높은 체력이었지만 이상하게도 숨이 찼다. 턱까지 헐떡거렸다. 심장은 쥐어짜는 것처럼 고통스러웠다. 그래도 멈출 수 없었다. 그렇게 기록팀 부서에 도착하자, 기록팀 호크마가 언제와도 같은 고요한 분위기로 로비에서 나를 반기고 있었다.

 

 


데스티니.”

 

, , 호크마님.”

 

무슨 일인가요? 당신이 이렇게 급한 모습을 보이다니.”

 

 


그는 아무것도 모르는 척 나를 맞았다. 하지만 그 내숭이 나에게 통하지 않는 것을 그는 잘 알 터였다. 나는 숨을 크게 들이쉰 뒤, 단도직입적으로 그에게 말했다.

 


 

살려주십시오.”

 

누구를 말입니까?”

 

복지팀의 딜런 직원 말입니다.”


 

 

호크마는 그저 웃으면서 나를 바라보기만 했다. 땀이 맺힌 손을 쥐락펴락한 지 몇 분 후, 그는 나에게 물었다.


 

 

이곳은 회사입니다. 절대 손해 보는 일은 하지 않지요. 더군다나 그를 살린다는 것은 순리에도 어긋나는 일이기도 합니다.”


 

 

감정에 동조하지 않는 나도 이 말은 우습기 짝이 없었다. 이 회사에 도대체 무슨 순리가 있단 말인가. 죽은 이들은 제대로 죽지도 못한 채로 지하에 반영구적으로 잠들고 필요할 때 잠깐 나와 꼭두각시처럼 버리는 주제에.

 


 

하지만 팀장인 당신이 요청한다면, 한번 고려해 볼 수도 있죠. 만일 그를 살린다고 하면, 당신은 무엇을 바칠 수 있지요?”

 


 

그는 간사하게도 구원자의 얼굴을 하며 나에게 다정하게 손을 내밀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알고 있다. 저 손은 악마의 손이고 저 달콤한 말은 악마의 음성이라는 것을.


 

 

제 모든 것을 바치겠습니다.”


 

 

딜런. 당신이 나에게 온 지는 그리 긴 시간이 아니었지만 당신은 어느 새 내 전부가 되었으니까.

나에겐 존재 가능성이 희박한 신이 아닌 당장 그를 살릴 악마가 필요했다.

 

 

 

 


 

 

그래. 여기까지가 내가 이 추출팀의 환상체 추출대에 누워있기까지의 이야기였다. 옆에서는 성격답지 않은 조곤조곤한 아나스타시아의 기도 소리가 들렸다. 안녕을 위하는 기도 소리였지만 너의 손이 사시나무처럼 떨리고 있었다. 처음에는 기도로 시작한 소리가 고통에 찬 흐느낌 소리로 변했을 때, 멀리서 또 각, 또 각, 구두 소리가 들려왔다.

 


 

너로구나. ‘소원을 빈 기록팀장이.”


 

 

창백한 얼굴, 검은 흑발에 한쪽은 금발인 투톤 머리. 눈가에 찍혀있는 검은 점. 추출팀의 세피라 비나가 가까이에서 나를 들여다보는 듯이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딜런은 어떻게 됐죠?”

 

걱정하지 마렴. 네가 원한대로 그는 무사히 부활하여 지휘팀장의 비호를 받다가, 회사의 동결 때에는 밖으로 나가게 될 거란다.”

 


 

눈앞에 지휘팀장인 벨라스케즈의 뒷모습이 스쳐 지나갔다. 그라면 맞길 수 있겠지.

그는 우리에게 슬픈 얼굴로 오래 보기를 바라.’라고 누누이 이야기하곤 했다. 이렇게 되기 전까지는 그 의미가 단지 환상체에게 목숨을 잃거나 정신이 잠식당해 미쳐버리는 것을 의미한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에 이르러 그것이 무슨 의미인지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너희같이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내몰린 자의 투신이, 이 깜깜한 지하에서 내가 즐길 수 있는 유일한 유희란다.”


 

 

비나가 손을 한번 간단하게 휘두르자 추출팀 직원들이 나에게 다가왔다. 모두 귀와 눈을 막고 있었다. 석상처럼 딱딱한 표정을 짓고 있어서 알아보기 힘들었지만 모두 아는 얼굴이었다. 따뜻한 누군가의 손이 얼굴을 쓸었다. , 너구나. 아나스타시아.

너는 입술을 짓이기고 목에는 핏대가 서 있었다. 극한으로 슬픔을 참는 모습. 내가 딜런을 잃고 지었던 절망의 다른 형태의 표정이었다. 너는 내 얼굴을 부드럽게 쓸어주다가 입에 손가락 하나를 찔러 넣고 목울대에 나머지 손을 얹었다. , 너는 마지막까지 상냥하구나, 아나스타시아.

 


 

너는 이런 선택 하지 마.”


 

 

이기적인 말이었지만 마지막에 내뱉는 진심이야. 미안해. 아냐. 난 이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어. 그를 너무 사랑하게 되어버려서, 나 자신의 가치는 아무렇지 않게 되어버렸어. 네가 인식할 수 있도록 천천히 혀와 입 모양을 바꾸고 소리를 길게 끌었다. 너는 그저 고요하게 유언을 인식하고 뻣뻣하게 굳은 목을 조금 끄덕였다.

 

그 모습을 보고서야 나는 드디어 눈을 감을 수 있었다.

 


 

너는 과연 어떤 형태로 다시 태어날지 궁금하지 않니?”


 

 

비웃는 듯이 비나가 던지는 말에도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가 직원들에게 신호를 보냈는지 기계가 가동하는 소리와 무수히 많은 손이 내 몸을 잡는 느낌이 들었다.

엔케팔린을 투여했는지 정신이 아득해지는 느낌이 들었지만, 그 와중에도 나는 온통 그의 생각에 흠뻑 젖어 있었다. 딜런. 당신은 세상을 더 겪어보고, 다시 별이 비추는 곳에서 살아줘. 그렇게 행복하게 살다가 언젠가 죽으면 그때야말로 서로 자유로운 형태가 되어

 


 

 

[별이 되어서 다시 만나자.]

 

 

 

 

 

 



 

여기서 뭐 하고 있지. 딜런 직원.”

 

. 아나스타시아 팀장님.”

 

 

아나스타시아는 격리실 앞에 있는 직원을 보고 눈을 가늘게 좁혔다. 하필 가장 마주치고 싶지 않은 존재였다. 벨라스케즈 팀장은 뭐하고 있는거야. 이렇게 딜런이 빨빨거리면서 돌아다니고 있는데.


 

 

며칠 전에 이 환상체의 격리실에서 소피 직원을 구해냈다고 들었는데.”

 

앗 구해냈다니요. 과찬이십니다.”

 

칭찬하는 거 아니야. 그건 당연한거고. 그 위험한 광경을 봤을 텐데 다시 이 격리실로 오다니, 너도 그새 홀린 거 아니겠지?”


 

 

아나스타시아는 손을 들어 자신의 등에 걸쳐놓은 마탄을 꺼내려는 시늉을 했다. 딜런은 소스라치게 놀라면서 그녀를 만류했다.


 

 

, 그렇지 않습니다. 다만 치료를 받게 된 동료들에게 편지를 받아서…….”

 

편지? ‘감염된자들에게 편지를 받았다고? 그걸 왜 보고하지도 않고 가지고 있어?”


 

 

딜런은 파들파들 떨리는 손으로 아나스타시아에게 편지를 내밀었다. 그녀는 탁 소리 나게 딜런에게서 편지를 빼앗아 든 다음 그 내용물을 확인했다. 처음부터 썩 유쾌한 표정은 아니었지만 밑으로 내려갈수록 썩은 사과처럼 표정이 무시무시하게 변해갔다.

 

 


죄인? ? 순교자? 나팔소리? 별 웃기지도 않은 말이야.”

 


 

와작. 편지는 단말마의 비명도 지르지 못한 채로 그대로 구겨져 버렸다. 딜런은 자신을 불같은 눈길로 노려보는 아나스타시아가 편지 다음으로 자신의 허리를 접어버리는 게 아닐까 두려워졌다.

 


 

꺼져.”

 

, ?”

 

꺼지라고. 교육팀에서 전달 못 받았나? 이 격리 소에 4등급 미만 직원이 얼쩡거리는 것만으로 징계 사유야. 징계팀에 끌고 가기 전에 꺼져.”

 

, 알겠습니다!!”

 


 

딜런의 얼굴은 이미 시퍼렇다 못해 블루베리처럼 변해가고 있었다. 그게 외친 후 어색한 몸놀림으로 엘리베이터 허브를 향해서 뛰

려고 했으나


 

 

잠깐. 거기 서봐. 생각해보니 궁금한 게 있었어.”


 

 

그 말을 들은 직후 급하게 제동한 것 때문인지 딜런은 크게 넘어질 뻔했다. 꼴사납게 크게 휘청거리고 딜런의 얼굴은 블루베리에서 라즈베리로 바뀌었지만 아나스타시아는 별 신경 쓰지 않았다. 딜런의 심장은 미친 듯이 뛰었다. 도대체 왜지? 내가 또 은연중에 그녀에게 밉보이기라도 했나?


 

 

너 말이야.”

 

! 아나스타시아 팀장님!”

 

톤 좀 낮춰, 시끄러워. 너는 왜 저 환상체에게 현혹되지 않았지? 너야말로 평소에 별이니 뭐니 실없는 소리를 해대던 거로 기억하는데.”


 

 

다행히도 그녀의 질문은 단순했다. 딜런은 마음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다가 격리실을 힐끗 쳐다보았다.


 

 

아니니까요.”

 

?”

 

저 괴물이 별일 리가 없잖아요?”


 

 

저렇게 끔찍한 모습의 괴물이 어떻게 아름답고 찬란한 별을 흉내 낼 수 있을까. 딜런의 눈에 저 환상체는 그저 직원들을 꾀어 죽음으로 끌고 가는 괴물 중의 괴물이었을 뿐이었다.

아나스타시아는 할 말을 잃은 듯 잠시 그를 주시하다가 손짓으로 그를 지휘팀으로 돌려보냈다. 그 시끄러운 발소리가 저 멀리 사라지자 격리실 앞에는 침묵이 내리 앉았다.

 



, 하하하, 하하하하하하하하!!!!”


 

 

아나스타시아는 참을 수 없었다. 그 웃음을, 그 슬픔을, 그 절망을.


 

 

데스티니. 너는 도대체 뭘 바랐던 거야? 넌 도대체 무슨 깊은 뜻이 있어서 저딴 녀석을 위해서 이 모양 이 꼴이 된 건데?”


 

 

아나스타시아가 [검열삭제]가 된 딜런의 머리를 터트렸을 때까지만 해도 전혀 이런 결말을 예측하지 못했다. 분명 그때 터진 건 딜런의 머리였지만, 그 순간 데스티니의 끝도 없이 부풀러 올라 아슬아슬하게 유지되고 있던 이성마저 함께 터져버린 것이다. 회사에서 가장 굳건하고 강했던 네가 고작 이런 모습으로, 이런 형태로, 빌어 처먹을 딜런에게 들은 이야기만을 되새기는 것밖에 할 수 없게 되다니.

 

아나스타시아는 실성할 듯이 웃었다. 자신의 몸의 균형도 바로잡을 수 없을 정도가 되어 격리실에 기대었지만 그럼에도 그 웃음을 멈출 수가 없었다. 이상했다. 웃고 있지만, 목이 타오르는 것처럼 고통스럽다. 이미 웃음소리는 목이 졸리는 듯한 신음으로 변했지만, 그녀는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녀가 드디어 제대로 숨을 고를 수 있게 되었을 때, 그녀는 격리실 너머에 있을 그녀를 바라보았다. 보답받지 못할 마음과 너의 마음을 떨게 했던 수많은 그의 손짓과 발짓을 흉내 낸 듯한 모습. 수많은 죄를 저질렀음에도 푸른 별이 되기를 소망하는 데스티니의 그 기괴하고도 슬픈 모습은 비참하고 아련하기까지 했다.

 


 

별이라고? 미쳤어, 데스티니? 우리 같은 년들이 어떻게 행복한 사후를 생각할 수 있겠어? 저 멍청한 놈을 사랑하더니 너무 멍청해져 버린거 아냐?”


 

 

격리실 문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푸른 별의 모습과 유리창에 비치는 아나스타시아의 모습이 겹쳐졌다. 그녀는 손을 뻗어 유리창을, 괴물이 된 너를, 괴물이 될 자신을 쓰다듬었다.


 

 

정말 나쁜 년이야, . 그런 선택을 해놓고 나에겐 하지 말라고 하는 꼴사나운 말이 유언이라니.”


 

 

아나스타시아는 격리실의 문에 이마를 댔다. 마지막으로 느꼈던 너의 온기는 온데간데없어. 그저 차가운 금속의 느낌이 들 뿐.

 

 


우리의 종착지는 별 따위가 아니야. 바로 지금 네 모습이 우리의 종착지이자 우리의 끝이야. 네 마지막 말이 그렇다면 참아보겠지만, 언제까지 내가 를 유지할 수 있게 될까.”

 

 

 

기다려. 오래 걸리진 않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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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장들: 모두 하층에서 회사의 비밀에 닿은 자들이며 개인의 특성에 맞게 각 부서에 팀장으로 배치되었다. 로보토미 사에서는 팀장의 노고를 치하하여 그들에게는 '소원'이라는 권리가 하나씩 주어진다.


'소원'이란 팀장들이 어느 '대가'를 지불하고 회사가 들어줄 수 있는 한도의 소망을 비는 것을 말한다. 그 ''대가'가 무엇인지는 팀장 외에는 모르며 또한 알아서는 안된다.


정보왜곡환상체

'독사'라고 불리는 예소드는 매우 깐깐한 성격이었다. 자신의 부서의 직원들을 쥐잡듯이 못잡아 먹어서 안달이라는 그는 전 지부에서 공포스러운 존재였다. 그의 깐깐함과 정확한 잣대에는 누구도 피할 수 없었다. 심지어 관리자까지.

예소드는 현재 한껏 불만이 최고조를 찍은 시점이었다. 새로 부임한 관리자의 어리숙함때문에 지부의 일에 큰 지장이 생기고 예정되었던 대로 흘러가지 않고 오만데에서 삐걱거렸기 때문이었다.



"이거, 관리자님이 보면 우시는거 아냐?"



말쿠트는 아연한 표정으로 예소드가 4일밤낮으로 적은 보고서를 바라보았다. 관리자의 의자에 앉을 때의 태도에서 부터 원래 관리자가 해야했던 점, 지금 관리자가 놓치고 있는점, 특수 환상체를 관리할때의 주의점........ 등등이 매우 직설적이고 냉담한 어조로 적혀 있었다. 과연 누가 상사고 누가 휘하직원인지 모를 보고서였다.



"그 정도를 견디지 못하면 관리자일 자격이 없지. 이미 그 어리숙한 태도로 인해서 회사에 손실이 많이 발생했으니, 지금 바로잡는것이 중요해."



예소드는 말쿠트에게 서류를 철해달라고 내밀었다. 말쿠트는 잠시 서류를 어느 박스 위에 놔두고 서랍을 뒤져 펀치 한쌍을 찾아냈다. 예소드는 그 모든 작업을 비장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머리에는 이제 관리자가 있는 관리실로 들어가 그와 한바탕 싸움을 하던가 해서 이 모든 것들을 바로잡을 생각밖에 없었다. 말쿠트가 철한 서류를 내밀자, 그는 급하게 서류를 받고는 그녀에게 감사를 표하면서 관리실로 향했다. 그의 발걸음이 마치 전쟁터에 나가는 충정깊은 장수처럼 복도가 쿵쿵 울리는 느낌이었다.



"정말, 적당히 해야할텐데."


"말쿠트님. 도구형 환상체 격리실이 모두 정돈되었습니다."


"아 그래 이걸......."



그제서야 말쿠트는 잠시 서류를 얹어놨던 박스가 도구형 환상체를 억압시켜둔 상자였음을 깨달았다. 아직 환상체의 정보도, 대면도 한적 없이 갓 복지팀에서 보내준 환상체였다. 말쿠트는 그제서야 뭔가 불안함을 감지했다.


 




같은 시각, 예소드는 이미 관리실에 도달한 상태였다. 관리자는 여전히 널부러지고 엉망진창의 옷차림에 제대로된 마음가짐 하나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래. 이런 관리자를 정신차리게 하는 것도 자신의 임무라고 생각한 예소드는 당당한 태도로 관리자에게 보고서를 넘겼다.



"관리자님. 관리자님이 근무하셨던 4일간을 적은 보고서입니다. 읽어주십시오."


"아 그래. 수고 많네."



관리자는 나중에 읽을 양으로 보고서를 서류 근처에 놔두려다가 험악해지는 예소드의 눈빛을 보고 그만두었다. 설마 이걸 지금 읽으라는 건가?



"제가 직.접. 중요한 부분을 찝어드리겠습니다."


"그럴려고?"



좀 부담스러운데. 저 강렬한 눈빛과 함께 하는 (쓴소리로 추정되는) 보고서 읽기라니. 관리자는 살짝 긴장한 채로 보고서의 표지를 넘겼다.




[“크아아아아


 

관리자중에서도 최강의 투명간리자가 울부짓었다


투명간리자는 졸라짱쎄서 간리자중에서 최강이엇다]

 



?

관리자는 너무나도 당황해서 그대로 석상마냥 굳어버렸다. 사람또한 허용치이상의 정보를 받아드리면 잠시 행동을 멈추고 생각을 정리하는데 모든 에너지를 쏟는다는 설을 관리자는 직접 증명해내고 있었다.

잠시 30초 동안 아무런 행동도 하지 못했던 관리자는 굳은 목을 최선으로돌려 달력을 보았다. 4 1일은 아닌데. 혹시 몰라 시계도 확인했다. 41분도 아니었다그래 꼭 만우절이 아니라도 장난은 칠 수 있는거니까. 예소드가 항상심각할 수도 없고. 관리자는 당황한 자신을 다독이며 살짝 표정을 풀었다. 예소드가 이런 장난을 칠 수 있다니, 어느정도 가까워진 기분이었다.


 

이거 장난하는 거니?”



그 말이 끝나자 예소드의 표정이 지옥에서 올라온 마귀처럼 무시무시하게 변했다.



관리자님. 이건 제가 지난 4일간 관리시작 시점부터 업무종료까지를 소상껏 적어서 올리는 보고서입니다. 어떻게 이걸 장난이라고 볼 수 있는겁니까?”



그렇게 밖에 안보이는데.

아무래도 저쪽은 심각하게 진심인 모양이었다더 이상의 반박을 했다간 저 독사가 진짜로 자신을 콱 물어버릴까봐 관리자는 말을 목으로 삼켰다. 그래 문체가 좀 이상…….하긴 해도 어쨌든 관리자를 칭송하는 내용이긴 했다. 약간 문장력이 딸려서 이런 결과물이 나온게 아닐까. 그래, 자고로 상사의 입장에서는 부하의 못난 점도 품어줘야 마땅하다고 관리자는 합리화를 했다.


관리자가 정신줄을 잡자, 예소드는 서류의 중요부분을 찝어 안내했다.

 


“3 17줄 부터는 관리자님께서행하셔야 하는 목록입니다.”



관리자도 첫장만 이렇게 임팩트 있게 만들고 나머지는 괜찮게 적었겠지, 라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오 조은데 심심한데 다주겨야지

 

투명간리자가 브레스를했다 그러자 아니 브레스도 안하고그냥 한손에서빔을 쐈다


콰콰콰콰 허접 환상체들이 그거 한방에 모두 날아가따]


 


브레스가 뭔진 아나?”


증오의 여왕을 제압할 때 못보셨습니까? 입에서 나오는 거대한 에너지파가 아닙니까.”


 

그러니까 그걸 왜 난 손으로 쏴야 하냐고. 아니 애초에 사람이 어떻게브레스를 쏴.

이번에야 말로 관리자는 보고서에 무엇인가 오류가 있음을 직감했다. 입을열어 예소드에게 이 사실을 말하려는 순간, 예소드는 의기양양하게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당당하게 말했다.

 


이전 관리자들은 모두 쉽게 해냈습니다.”


 

그런 애들을 도대체 왜 관리자로 뽑은거야. 혼자서 알레프급 환상체들다 때려잡겠는데. 아니 그 이전에 사람이긴 해?

그러나 그 말을 들은 순간 관리자는 입을 다물 수 밖에 없었다. 여기에서못한다고 하면 관리자의 자격이 없다는 것을 스스로 인증하는 꼴이었다. 그래, 브레스를 뿜는다는 것은 비유적인 표현이 아닐까 사실 브레스에서 나오는 빔처럼 따뜻한 빛으로 격리실들을 관리해서환상체들에게 안정적으로 (혹은 격렬하게) 에너지를 뽑아오라는뜻일까.

그래, 이게 맞는 거 같아. 관리자는이번 정신적인 위기도 무사히 넘길 수 있었다.

 


더 자세한 설명은 한 장 더 넘겨서 9줄부터 있습니다.”




 

[“나의 진짜힘을 보일때가됬군



투명새는 졸라배를잡고 웃었다


투명새: 보이든지말든지


 

투명간리자는 존나분노했다 투명간리자는원래 분노할때만 진정한힘을 낼수 있었다 투명간리자의 분노해서 진정한 힘 기대하시라짜잔~~~]


 

관리자는 눈을 질끈 감았다. 그는 더 이상 합리화를 할 수가 없었다. 그는 이미 앞의 문장 몇 개에 이미 심히 지쳐있었다.

뭐가 뭔진 모르겠지만 자신이 잘못한 것 같았다. 어린시절로 회귀한것처럼 막 엄마도 보고 싶어졌다. 저 올바른 예소드가 이런 형태의 정신공격을 해올 줄이야. 살아온 인생을 이렇게나 뼈저리게 후회하게 될 줄은 몰랐다.

그냥 내가 잘못한 건 말로 해줬으면. 아니 오히려 이런식으로 정신공격을해대서 예소드의 별명이 독사인 것이 아닐까. 관리자는 불안함과 두려움에 손이 덜덜 떨렸다. 도저히 그 뒤를 볼수 없을 것 같았다.


지금 상황이 당황스러운 것은 예소드 측도 마찬가지였다. 그저 이제까지의 관리자가 한 실수, 그리고 개선해야 나갈 점, 특수 환상체의 공격패턴에 대한 것을 적어놨을 뿐인데 저렇게 덜덜 떨면서 머리를 쥐어뜯으며 괴로워할지 그도 생각하지 못했다. 아무래도 관리자가 자신의 무능력에 대한 회의감이 폭발한 것이 아닐까 우려한 예소드는 관리자의 가까이 다가가 그를 위로했다.



괜찮습니다 관리자님. 이제까지못해온 것도 차근차근 노력해서 고쳐나가면 됩니다.”



관리자는 그 말에서 더 큰 공포감을 느꼈다. 얘는 어디까지 진심인거지. 거짓말 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아서 더 무서웠다. 설마 처음부터 여기까지 모두 진심이었다면? 진짜로 모든 관리자가 손에서 빔을 쏘고 환상체들을 썰어버려야 하는 거였다면?

 

예소드는 나머지는 천천히 보라며 불안해하는 관리자를 두고 관리자실을 나갔다. 그와 동시에 안절부절 못하고 있던 말쿠트가 그에게 다가왔다.



"예소드! 그...... 보고서는 어땠어?"



말쿠트는 직접적으로 그 보고서가 환상체와 접촉했다는 사실을 말할 수 없었다. 그 말을 한 순간 예소드가 악마로 변해서 자신을 잡아먹어버릴 것 같았다. 그러나 예소드는 이상하게 개운한 표정(또는 살짝 죄책감에 물든 표정)으로 말했다.



"완벽했다."



 







회사가 하루 일과를 끝내고 모든 환상체와 직원들이 잠들시간에, 앤젤라는관리실로부터 기묘한 소리가 울려퍼지는 것을 느꼈다. 관리자는 회사의 중추와도 같은 존재였기 때문에그의 신변에 문제가 생기면 곤란했다. 엔젤라는 관리실의 문의 조금 열어 안을 확인했다.


 

관리자님. 무슨 문제라도.”


“파앗!”



그리고 엔젤라가 대면한 것은 수세기 전에 공 7개를 모아오면 용이 나타나서 소원을 이루어준다는 만화책에서 나올만한 포즈를 하고 있는 관리자였다.


 

. 이런 느낌이 아닌데.”



좀더 박력넘치고, 머리에서 황금기운이 올라오고 꼬리가 뿅 나올거 같은느낌이었는데.

관리자는 예소드의 그 진심어린 표정을 잊을 수 없었다. 처음에는 장난치나 생각했지만 그 진심으로 관리자에게조언하는 모습, 그리고 그에 자신이 무력감에 떨 때에 위로해주던 그 모습을 외면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한 손으로는 힘들겠지만 두 손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이전의관리자들에게 뒤쳐지지 않게 꾸준히 연습하기로 했다. 언제 성공할 지는 모르겠지만, 예소드의 말처럼 노력한다면 고쳐나갈 수 있겠지.


관리자는 자세를 가다듬었다. 다리는 살짝 대각선으로, 허리는 곧게, 팔은 세상의 모든 에너지를 모으는 듯 강한 힘으로 지탱했다. 그리고 힘껏 기합을 내지르면서 손을 앞으로 휘둘렀다.



"파아앗!!!!"




.......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던 앤젤라는 관리자의 누구에게도 들켜선 안될 은밀한 사생활을 은폐하기 위해 문을 닫았다.












드래곤볼 + 투명드래곤 + 정보왜곡 scp + 은혼 무인도편 등등 패러디됨 ㅇㅅㅇ

+) 관리자는 A가 아닌 타인이라는 설정입니다. 캐붕 당하지 않도록 조심조심!


같은 말, 다른 의미

네가 최악이라고 생각하지마.”


 

네짜흐가 호드를 향해서 고개를 숙였다. 그의 엉망진창으로 흐트러진 녹정발이 호드의 얼굴에 스쳤다.


 

내가 있으니까.”


 

호드는 당황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며 눈을 깜빡거렸다. 언제나 신경질적이고 남의 일에 무관심한채 자신의 종말만을 기다리는 그가 할 말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 모습을 얼마 떨어진 곳에서 말쿠트와 예소드가 지켜보고 있었다. 말쿠트는 호들갑을 떨면서 얼굴을 붉혔다.


 

네짜흐가 저런 상냥한 말을 할 수 있다니! 오늘은 약빨이 잘 받은걸까?

 

“상냥하다니?”


오히려 오늘 더 상태가 좋지 못해보이는데. 예소드가 작게 중얼거린 것을 말쿠트는 듣지 못한 모양이었다.

 

말쿠트의 발그레한 표정과 달리 옆에 서 있던 예소드의 표정은 새삼 심각한 것이 아니었다. 평소에도 딱딱한 표정이었지만 지금 예소드는 못볼 걸 보았다는 듯이 가득 찡그린 표정이었다. 말쿠트는 그의 이런 분위기를 파악하지 못한채로 여전히 호들갑을 떨면서 예소드의 어깨를 팡팡 쳤다.


 

그야 네가 최악이라도 내가 옆에 있으면 최악이 아니라는 거잖아!

 

그게 그렇게 해석되나?”


 

방방 날뛰던 말쿠트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저렇게 부드러운 말이 다른 의미로 해석될 여지가 있나?


 

그럼 무슨뜻인데?”

 

그야.

 

내 상황이 더 엿같으니까, 내 앞에서 힘든 척 하지말라는 소리잖아.”

 


그의 긴 머리카락 사이에 잘 보이지 않았지만 예소드는 확실히 알 수 있었다. 호드를 내려다 본 눈빛은 전혀 누군가를 공감하거나 위로하기 위한 표정이 아니었다. 굳은 표정 그 사이에는 그저 자신의 상처에 신음하는 표정만이 담겨 있었다.

그의 목소리가 제법 떨어져 있다고 생각한 네짜흐에게 까지 닿았는지 그가 뒤를 돌아보았다. 두 눈이 마주쳤다. 짧지만 꽤 오랜 시간동안 서로는 서로를 응시했다.

 

 

네짜흐가 배시시 웃었다. 그 웃음은 아프디 아픈 상처에서 배여나온 피처럼 소리없는 비명이었다.

 

눈치가 빠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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